-
나는 나를 드러내면서도 감추고 살았다.글 2020. 7. 1. 03:51728x90
나는 나를 드러내면서도 감추고 살았다.
기장이 짧거나 어깨가 파인 옷을 입으며 불필요한 신체 노출을 했다. 동시에 컨실러, 립스틱 등으로 나의 진짜 모습을 감추었다. 이 모든 것은 누구를 위해서였을까? 이것의 답을 알지만 굳이 적고 싶지 않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나'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나의 신체'를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신체는 나만의 것이 아닌 공공재였다. 사회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정신 차려 보니 나의 몸은 공공재로서 남의 눈요깃거리가 되거나 평가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남들이 원하는 대로 바꾸기도 했다. 나는 이런 취급을 원하지 않았다. 애초에 꾸밈도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를 틀에 맞추려고 했다.
대부분의 여자가 들어가게 되는 '꽃 모양 틀'이 있다. 우리는 이 틀에 몸을 맞추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을 하고,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건강을 망친다. 나는, 우리는, 약 77억 인구 중에서 단 한 명만 있는 특별한 존재다. 모두 제각각 얼굴과 성격,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다 다른 게 정상이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들의 얼굴을 비롯한 겉모습이 똑같아진다. 똑같이 쌍꺼풀을 만들고, 피부는 하얗게, 입술은 채도 높은 색으로, 아이라인은 블랙이나 브라운 계열로, 그리고 팔다리와 겨드랑이, 심지어는 음부까지 제모한다. 마치 바비인형처럼.
얼굴뿐만이 아니라 똑같이 치마와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는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격과 좋아하는/싫어하는 것들도 다 비슷해지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기를 꺼려 쿠션어를 쓰고 빙빙 돌려 말하거나 부드럽게(혹은 애교 있게) 말한다. 자신이 완벽하게 하지 못 하는 일에는 자신감이 없고 나서기를 망설인다. 이 모든 것들의 앞에는 이러한 생각이 함께한다. '내가 이렇게 해도 될까?'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며 그 틀 안에서도 자꾸만 작아진다. 또한, 작고 귀여운 것을 (남성과 비교해 눈에 띄게) 좋아하며 축구 등의 스포츠를 취미로 하지 않는다. (일반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각자 자신의 몸의 모양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거의 모든 여자가 똑같이 '꽃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이 우리를 '꽃 모양 틀'에 넣어놓고, 혹은 들어가도록 해놓고 '내가 원한 것'이라며 가스라이팅한다. 나의 몸과 맞지 않는 '꽃 모양'이 되기 위해 그것에 억지로 몸을 맞추는 것은 자해의 일종이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꼭두각시 인형으로 살았다.
꼭두각시 인형은 사람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인형이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타인이 원하는 대로(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꼭두각시 인형은 투명하고 얇은 실이 몸의 모든 부위에 연결되어 있지만 그것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꼭두각시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은 어떠한 행동도 절대 주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사람이 뒤에 있다는 걸 알지만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심지어는 그 존재를 잊거나 부정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이질감이 들지 않아 그 연극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내 눈에는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들)이 꼭두각시 인형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 얇디얇은 실이 너무나도 눈에 띈다. 언젠가 그것이 내 시야에 들어왔을 때 그 존재를 믿고 싶지 않은 눈으로 연극을,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살 좀 빼라는 말에 다이어트를 했고 그 결과로 더 많은 외모 평가를 얻고 건강을 잃었다. 화장 좀 해보라는 말에 화장품에 많은 지출을 하며 직접 내 손으로 화학약품을 얼굴에 정성스레 발랐다. 여자애가 발이 크다는 말에 내 발 치수보다 두 치수 작은 신발만 사서 신었다. 발이 아프고 물집이 생겼지만, 발이 커 보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안경 도수가 높아 안경을 끼니 눈이 작아 보인다며 렌즈를 끼라는 말에 콘택트렌즈에 거액을 지출했다. 렌즈를 착용하면 눈이 쉽게 건조해져서 인공눈물을 주기적으로 구매해 수시로 넣어줘야 했다. 여자인데 목소리 톤이 낮다는 말에 내 목소리를 혐오했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바꾸기 위해 긴 시간을 투자했다. 눈이 크고 확 트여야 취업이 잘 된다는 말에 쌍꺼풀 수술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취업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취업한 친구의 남자 동기들 얼굴을 보고 이 세상에 속았다는 생각과 함께 받았던 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심지어 비만도 있었다. 뚱뚱하면 취업이 안 된다고 해서 다이어트를 했던 나와 다른 수많은 여자친구들은 의문스러웠다. 저 말이 틀린 말은 아니나, 그 말 앞에 '여자들은'이라는 단어가 빠졌다. 쌍꺼풀 수술하고 '날씬'해도 취업이 안 되는 여자애들이 많았지만 쌍꺼풀 없고 뚱뚱한 남자들은 잘만 취업했다. 언제는 신발 가게에 가서 굽이 낮은 구두를 찾았고 여자 구두에 5센티 정도의 굽은 굽도 아니라는 말에 굽 있는 신발들을 샀었다. 그 신발들은 불편해서 뛰기는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전부 세 번도 못 신었다.
위에 열거한 것들은 모두 내 경험담이다. 내가 내 손으로 화장품을 바르고, 렌즈를 착용하고, 발 아픈 굽 있는 구두와 작은 신발을 신었으며, 내 의지로 끼니를 걸렀다. 꼭두각시도 겉보기엔 본인의 의지로 걷고 꼭두각시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과거 행동을 만들어낸 건 나의 주체적인 욕구가 아니라, 아주 교묘해서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는, 많은 실과 그것을 이용해 조종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안다. 자신이 이렇게 툭툭 뱉는 말대로 여성들이 행동하게 되리라는 것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손가락을 조금만 톡톡 움직여도 꼭두각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모든 여성이 이 실과 조종하는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를, 그리고 실을 끊어내고 탈출해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고 목청을 높이기를 바란다.
나는 페미니즘을 만나고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더는 불필요한 노출로 나의 신체를 드러내지 않고, 화장품이나 스키니진으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남성들의 눈요깃거리로, '꼴리는 먹잇감'으로 꾸미지 않는다. 나는 나를 세상이 만든 틀에 맞추지 않고 나만의 인생을 개척해나간다. 그리고 나처럼 몸에 연결된 실을 끊어내고 뛰쳐나온 자매들과 발자국을 남기며 살아간다.
페미니즘은 나의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이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내 꽃밭에 불을 질렀고 그 안에 있던 나는 활활 타오르며 진정한 나의 존재를 확인했다. 나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망가진 꽃밭을 뒤로한 채 건강을 회복하고 시간과 돈을 절약하며 야망을 안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뒤로 돌아가서 꽃밭을 가꾸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꽃밭을 불태우며 함께 타오르던 그 감각을 평생 잊지 못할 테니.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두 (0) 2021.07.29 돌아온 코시사의 계절 (0) 2021.04.26 여성이 지출하지 않았어도 되는 돈의 액수를 구하시오. (0) 2020.11.18 [Rad Write] 2주 글감 7회차 '축제' (0) 2020.05.11 [Rad Write] 2주 글감 3회차 '문' (0) 2020.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