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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 스릴러 영화 <언더 워터> 감상문 (스포O)
    영화 감상문 2020. 5. 29.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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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 있음. 한번만 봐서 최대한 기억을 되짚어서 쓴 거라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꼭 쓰고싶었던 부분 위주로만 씀.

     

     첫장면, 사람이 감정적이면 잃는 게 많아지고 힘들다며 냉소적인 게 좋다고 하는 크리스틴의 나레이션이 나옴과 동시에 거미를 살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노라(크리스틴)는 감정적인 사람으로 살면서 힘들었던 일이 많았나 보다. 본인이 원래 냉소적인 사람이 아닌데, 냉소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보통 이런 영화에선 나레이션이나 주요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주절주절 설명하는 씬이 나오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다소 짧은 크리스틴의 나레이션이 끝난 뒤 양말을 신으려던 중에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를 따라 가보니 천장에서 물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멍하니 쳐다보며 내민 손에 물이 튀기는 슬로우 모션이 나왔고 한없이 조용하던 영화는 이 장면 이후로 한없이 시끄러워진다. 웅장한 소리가 상영관 내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며 바닥이 약간 울려서 더 몰입이 됐다. 해저 기지가 폭발하면서 노라는 전속력을 다해 달린다. 도입부부터 지루한 설명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게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영화 내내 인공지능 목소리로 안내방송이 들리는 게 소름끼쳤다. 만약 모든 사람이 다 죽었어도 그 조용한 적막 속에서 계속 저 음성이 울려퍼질 생각을 하니 더 그랬다.

     노라는 열심히 달리고 기계를 작동시켜 동료 직원인 로드리고와 함께 살아남는다. 그리고 같이 기지 내부를 돌아다니다 탈출용 포트가 있는 곳에서 부상 당한 캡틴을 만난다. 곧 다른 동료인 에밀리와 파울, 스미스를 만난다. 이렇게 6명이서 지도를 펴놓고 탈출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고 위험이 커서 다들 망설였지만, 어차피 이곳에 계속 머물다가 죽느니 살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게 더 좋다고 결론 내린다. 그렇게 이들의 무모하면서도 용감한 탈출이 시작되고 여러 고비와 직면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소소하게 좋았던 것. 성적대상화 된 연출이나 그러한 카메라 시선이 없다는 점이다. 노출이 있는 장면이 종종 있었는데 전혀 성적대상화 되지 않았었다. 슈트로 갈아입는 과정에서 노라가 에밀리 보고 "이 슈트를 입으려면 바지를 벗어야 한다."라고 했을 때 속으로 '아 설마... 벗는거 보여주지마 제발...'하고 빌었는데 에밀리 대신 스미스였나? 어떤 남자가 팬티만 입은 채 화면 가득 엉덩이를 내밀고 팬티에 구멍이 났다며 한탄하는 장면이 나와서 안도했고 또 좋았다. 여자 캐릭터를 성적대상화 하는 대신 남자 캐릭터의 노출장면을 웃기게 보여줘서. 성적대상화 뿐만 아니라 전형적으로 이제껏 여자 캐릭터들이 해왔던 '힘 빠지게 하는, 분위기 깨는 말'을 남자 캐릭터의 입으로 하게 했다는 것도 좋았다. 공포에 떨며 난 포기하겠다고, 날 두고 가라고 하는 약해빠진 겁쟁이, 분위기 브레이커 클리셰 대사를 남자 캐릭터가 말해서 신선했다. 찾아보니까 남자 감독이라서 좀 의외였다.

     슈트를 입던 장면에서 에밀리가 천천히 올려다 본 벽에 어떤 그림이 있었다. 그건 사람(들)이 어떤 문어같이 생긴 생물에 잡혀있는 그림이었다. 이 장면 덕분에 나중에 심해에서 저런 문어 같은 생물에게 공격을 당하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마주한 그 생물은 정말 힘이 세고 위협적이고 무서웠다. 강력한 힘으로 슈트를 찢어 사람을 죽이고,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데, 심해라서 어두운 탓에 더 공포스러웠다. 난 스릴러 영화로서 그 쫄깃함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후반부부터는 쭉 입틀막 하고 봄.)​

     사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그러게 왜 생태계에 이런걸 만들었어...! 인간들이 제일 나쁘다..' 이런 건데, 이 영화에선 인간들이 미스터리의 심해 생물에게 공격당한다. 조금 안타까웠지만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또 소소하게 좋았던 점은 함께 탈출하는 남자동료들 4명 중 1명만이 살아남고 차례차례 죽어나간 것. 그걸 보면서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가 생각났다.ㅋㅋ 그리고 동료들이 죽어도 오래 슬퍼하고 좌절하지 않았다는 것도 좋았다. (사실 그럴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 크지만.) 물론 노라와 에밀리도 당연히 사람이고 감정을 느끼니까 슬퍼하기도 했고 겁을 먹기도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굉장히 이성적인 모습을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저 상황이었으면 이성을 잃거나 혼절하거나 둘 중 하나였지 않을까...^^ 기계도 척척 전문적으로 잘 다루고 최대한 이성적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노라가 정말 멋있었다.

     나는 주인공은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아니 이 상황에서 노라가 어떻게 살아나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큰 착각이었다... 세개의 탈출용 포트가 남아있는데 두개만 정상작동 하는 것이고 하나는 고장난 것이었다. 샘이었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남자를 먼저 보내고(이것도 남자 캐릭터는 약해서 여자 캐릭터 둘이 챙겨줘서 먼저 보내는게 미러링으로 느껴졌고 좋았음.) 나머지 하나만 정상작동 하는 것을 눈치챈 에밀리와 싸우다가 노라가 결국 억지로 포트에 태워보낸다. 꼭 뒤따라 가겠다며. 그러나 노라는 에밀리를 보내고, 남은 고장난 포트를 고치려는 노력은 커녕 아예 등지고 앉아버린다. 처음부터 고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이제껏 만났던 심해 생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생물을 만나는데, 그 생물에게서 작고 무수히 많은 생물들이 뿜어져 나왔다. 이건 진짜 '뿜어져 나왔다'는 표현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굉장히 멋있는 나레이션이(잘 기억 안 남) 나오면서 그 장면을 보는 노라는 겁먹은 기색 하나 없이, 어떤 핵심 에너지자원이 녹도록 기계로 설정하고 곧 그것이 폭발하며 그 생물들을 죽인다. 나레이션 중 극히 일부는 기억난다. 첫장면과 겹치는 나레이션이었는데(난 첫장면과 마지막장면이 겹치는 연출을 정말 사랑함.), 첫장면에선 바닷속에 있다 보면 시간개념이 없어져서 낮과 밤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나레이션이었고 마지막장면에서도 비슷한 말을 한다. 폭발까지 남은 시간이 1분이었는데 시간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나레이션이 나오다가 폭발하는 장면이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잡힌, 그 광경을 바라보는 노라의 멋진 표정. 비록 다른 두명의 동료들과 함께 살아남지는 못했지만, 꼭 주인공이 살아나가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멋진 엔딩이 나올수도 있는거구나를 깨달았다.

    # 총평

     

     나는 이 영화를 여성서사로 분류했다. 일단 영화 포스터에 크리스틴 혼자 있고, 다른 남자 캐릭터의 서사와 비중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중간에 차례차례 죽어나가거나 나머지 살아남은 한명도 다쳐서 별 대사 없었고 그저 에밀리한테 의지함.) 전체적으로 노라 중심 전개+에밀리와의 연대가 돋보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가 좋아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완전히 부순 느낌을 받았다. 먼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반삭머리. 영화 보면서 반삭하고 싶은 생각이 계속 들 정도로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매우 이성적이고, 용감하고, 다른 남자 동료들은 잘 못하지만 기계를 엄청 잘 다룬다. 또 잘 웃지 않는다는 것도. 사회가 생각하고 좋아하는 여성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반대된다. 아직도 사회와 미디어는 꾸민 여자, 활짝 웃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들은 감정적이다.', '여자는 기계 못다룬다.' 등의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 노라라는 캐릭터에 큰 의미를 두었다. 이 영화에서도 오히려 남자 캐릭터들이 감정적이었지 노라와 에밀리는 이성적인 편이었듯이, 앞서 열거한 말들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장르와 소재가 이렇다 보니 어린 아이들은 이 영화를 거의 안 볼 것 같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힌 잘못된 여성의 이미지에 조금이라도 금이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적이고, 용감하고, 웃지 않는, 기계를 잘 다루는 여성의 이미지를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결말에서 노라가 살아남지 못해서 그런지, 영화평에 결말이 별로였다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난 저런 불가능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면 아무리 픽션이고 영화라지만 너무 현실성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더 싫었을 것 같다. 비록 탈출은 실패했어도 주인공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괜찮았다. 뭐 당연히 살지는 못했을 거라고 예상 가능한 결말이었지만, 죽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멋지게 심해 생물들을 죽이는 장면으로 끝나서 좋았다. 중간중간 클리셰가 있긴 했지만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음향과, 섬세한 CG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재밌었다. 스릴러를 좋아하는데 여성이 활약하는 영화를 보고싶으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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