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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년 여성과 유색인종 여성의 여돕여 <레이트 나이트> (스포O)
    영화 감상문 2020. 6. 3.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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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 있음.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전에 재밌게 봤던 '레이디스 나잇(원제: Rough night)'이 떠올라서 호기심에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대여해서 봤다. 여성주의적 시각을 배제하면 3.5점 정도인데 여성 캐릭터들 설정과 중간중간 나오는 대사들이 좋아서 4.0점을 줬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면서도 '이거 여자가 만들었구나.'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트리플 F(여성 주연, 여성 감독, 여성 작가)였다. 역시 여자들이 만든 여자들의 이야기는 눈에 띄게 다르다.

     

    줄거리 요약: 코미디계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20년 넘도록 커리어를 유지해 온 주인공 캐서린 뉴베리(엠마 톰슨)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랫동안 진행하던 토크쇼에서 밀려날 위기에 닥친다. 원래 있던 남작가를 쿨하게 자르고, 새 직원으로 여성을 고집해서 채용한다. 그렇게 화학 공장에서 일하던 몰리 파텔(민디 캘링)이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작가일이지만 기존의 남직원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며 캐서린의 커리어 유지를 도와준다. 그렇게 몰리의 큰 활약으로 캐서린은 자신의 쇼와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 여성캐릭터들의 설정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성서사 영화여도 캐릭터 설정에서 실망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 영화의 주요 여성 캐릭터들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캐서린 뉴베리- 짧은 머리의 백발 노년 여성이다. 여성들은(특히 방송업계에서는) 나이를 먹으면서 끊임없이 '이제 어느정도 벌고 인기를 얻었으니 그만해도 되지 않겠나'는 식의 가스라이팅을 당한다. 캐서린도 분명 그런 말을 들어왔을텐데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토크쇼에서 '보기 좋게' 물러나라는, 해고 통보에 가까운 말을 방송국 국장에게 들었을 때도 '아, 이제 내 시대는 지나갔구나. 후배들에게 파이를 나눠줘야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더욱 야망을 다지며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 무척 멋있다. 또한 부하직원들에게 막말을 뱉으며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잘라버리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저 악독한, 피하고 싶은 보스지만 그동안 이런 여성캐릭터를 너무 원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메릴 스트립)이 생각나기도 했다.

     

     몰리 파텔 - 인도계 유색인종 여성이다. 유색인종과 여성이라는 두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다. 전에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본적이 있다. '남학생들은 20%만 할 줄 알아도 자신있게 하겠다고 하는 반면, 여학생들은 80%를 할 줄 알아도 하겠다고 말하기를 망설인다.'는 말이었다. 대개 여성들이 자신이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잘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캐릭터는 정말 흔치 않다. 왜냐하면 자신은 전혀 다른 분야인 화학 공장에서 일했고, 그 이전에도 작가일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연히 공장의 게시판에 붙어있던 작가 채용 공고를 보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는 점이 좋았다. 면접 때도 이런 포부를 갖고, 어쩌고 가식적인 말을 늘어놓지 않고 위처럼 '저희 공장의 게시판에 공고가 붙어있길래 지원했어요!'라고 당당하게 얘기한 것도 재밌었다. 소위 우리가 '사회생활'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종인 '상사에게 기어오르지 않고 기분 거슬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룰을 깨고, 캐서린의 문제점에 대해 직설적으로 지적하며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캐롤라인 모턴 - 방송국 사장이다. 여성 방송국 사장! 지금까지 한국의 공중파 방송국에서 여성 방송국 사장이 나온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자체로도 일단 좋다. 하지만 이 캐릭터의 성격 또한 좋다. 일단 이성적이고, 다소 직설적이다. 그리고 헛으로 그 자리에 있는게 아니라 시청률이 떨어지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고 한다. 또 가식적이지 않다. 캐서린 앞에서 가식적인 말을 하다가 캐서린이 눈치채고 면전에서 거짓말은 하지말라고 하니 바로 웃으며 본심을 말하는 사람이다. 


    # 인상 깊었던 장면 위주의 감상

     

    1. 캐롤라인의 기사를 읽는 캐서린.

     이 장면에서 '여자로서 방송국 대표를 맡아...'라는 자막과 함께 기사가 나온다. 이것을 두고 캐서린은 "'여자로서'라는 말로 문장을 시작하면 쓰나. 촌스럽게..."라는 대사를 한다. 여성작가와는 거의 일하지 않았던 캐서린이라 이 장면이 조금 의외였다. 어찌 보면 이 바닥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일했는데 이런 사소한 여성혐오 표현을 눈치채고 싫어하는게 당연하다. 개인적으로 '여자로서'라는 표현보다는 이 기사 속 사진이 더 여성혐오적이다. 캐롤라인이 능력이 있으니까 방송국장 자리를 꿰찬 것일텐데, 사진에서의 캐롤라인은 핫핑크 색의 미니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양쪽 다리를 옆으로 (조금 많이) 비스듬하게 놓았다. 아무리 봐도 능력있는, 방송국장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2. 연봉 인상을 요구하는 남작가에게 성차별이라고 하며 해고함.

     기존에 있던 남작가가 "제가 외벌이인데, 아내가 막 둘째를 낳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집에 지출이 많다 보니까 연봉을 올려주실 때 같아서요."라고 말한다. 그걸 듣고 캐서린은 "지금 그 말이야말로 직장 내 남성 승진에 관한 전형적인 성차별적 주장의 가장 확실한 예시거든. 돈을 더 달라는 이유가 업무와 관련한 기여도 때문이 아니라 그저 가족 때문인건데, 그래서 1950년대엔 가장인 남성이 여성 동료보다 먼저 승진했지. 이렇게 깔끔하고 교육적으로 실감해 보긴 처음이네."라고 말한다. 남작가와 몇마디 더 나누다가 "네가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데, 그게 독신인 여남직원에겐 불공평하다는건 알거야."라고 한다. 이 장면 정말, 너무, 통쾌했다...ㅋㅋㅋ 그리고 이 남작가는 바로 잘린다.

     

    3. 커다란 쓰레기 봉지에 맞는 몰리.

     캐서린네 회사 면접을 가는 길에 서서 자신이 좋아하는 시 구절을 읊다가 아저씨가 던진 커다란 쓰레기 봉지에 맞고 몰리는 "뭐예요!"하면서 짜증을 냈다가 아저씨를 보고 곧바로 "네, 알았어요."하며 두손으로 방어하는 듯한 손짓을 한다. 웬만한 여성이라면 다 이해하는.. 짠한 장면이라 이것도 여성의 삶의 일부를 보여주는 섬세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4. 남성 카르텔.

     몰리처럼 작가 면접을 보러 온 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와 기존 남직원들이 친분이 있는 사이인지 네명의 남직원들이 포옹을 해주거나 응원의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한 남직원이 "아빠가 방송국에 전화해뒀어. 넌 무조건 합격이야."라고 말한다. 경쟁자인 몰리가 바로 옆에 있는걸 뻔히 알면서도 저러는건 기죽이려고 그랬던걸까? 암튼 재수없다.

     

    5. 위의 장면에서 남직원이 경쟁자남에게 알려주었던 팁을 써먹는 몰리.

     위 장면에서 한 남직원이 팁이라며 "넌 책임질 사람도 없고, 여자 친구도 없어. 넌 수도승이야."라고 말한다. 남자들을 유심히 보고있던 몰리는 이 말을 자신의 경우로 응용하여 면접에서 써먹는다. 나 같았으면 지독한 남성 카르텔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부러 듣지 않으려고 했을 것 같은데, 저렇게 캐치해서 바로 써먹는 몰리가 대단했다. 이 영화에선 이 팁을 남자에게 줬지만, 현실 여성들이 취업할 때 저런 것들을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 떠올라 조금 슬펐다. 개인적으로 면접에서 내 나이를 보더니 '기혼은 아니시죠?'라는 말을 들었던적이 있다. 내가 나이가 조금 더 있었더라면 아예 '결혼 하셨나요?'라고 물어봤을 것 같다. 세상에 아직도 직원 뽑으며 기혼/미혼을 따지는 회사가 있다니. 남자는 책임질 가정이 있다는 핑계로 연봉상승과 승진이 쉽게 이루어지지만 여성의 경우는 정반대다.

     

    6. 남직원들 앞에서 정식으로 소개된 몰리.

     면접관이었던(직책 모름.) 남자가 남직원들 앞에서 정식으로 몰리를 소개하자, 하나둘씩 무례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배고팠는데 다행이다, 오봉팽 빵집 오늘의 수프가 뭐래요?" "L.L. 빈에 택배 반품 좀 해줄래요?" 그 말들을 듣고만 있던 면접관 남이 "제작 보조 아니야, 이놈들아. 새 작가님이셔."라고 한다. 그러자 몰리 쪽을 쳐다도 보지 않던 남직원들도 그제서야 의자를 돌려 몰리를 쳐다본다. 여성이, 그것도 유색인종 여성이 작가를 맡는다는 생각을 아예 못했다는건가? 캐서린이 여자 작가와는 거의 일을 하지 않았던 영향도 꽤 큰 것 같지만.

     

    7. 지각한 남직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쓰레기통에 앉는 몰리.

     한 남직원이 여자친구 일 때문에 지각해서 한의자가 비워져있는 상태였다. 자리 주인이 오면 그때 비켜줘도 괜찮을텐데 몰리는 쓰레기통에 앉겠다며 쓰레기통 안의 쓰레기들을 비우고 뒤집어 그 위에 앉고는 "의자보다 편하네요."라고 한다. 그 의자에 앉는게 그렇게 눈치보고 못할 일은 아니고, 작가로서 충분히 앉을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몰리는 자신을 작은 존재로만 생각했나보다. 게다가 새 작가가 왔다는걸 알았으면서도 그 많은 남직원들 중에 한명이라도 의자 하나 더 갖다놓은 사람이 없다는 것에 화난다. 남자는 엄청 잘 챙겨주더니. 비어있던 자리의 주인 때문에 화가난 캐서린은 그 남자를 자르고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며 "내일은 좀 의자에 앉아!"라고 한다. 몰리는 곧바로 "잘린 사람 의자에 앉아도 되나요?"라고 물어본다. 왜 그걸 물어보고 허락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거야..? 당연히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인데. 여성들이 많이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8. 여성혐오 발언하는 뚱뚱한 남직원.

     뚱뚱한 남직원(이름 모름.)이 노트북으로 몰리가 근무하던 화학 공장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몰리의 소개를 창에 띄워놓고, "나도 유색인종 여자면 좋겠다. 그럼 자격 없어도 어디든 취직할 수 있잖아."라는 망언을 한다. 이는 '지방 사는 애들은 좋겠다. 농어촌특별전형으로 대학 쉽게 들어갈 수 있잖아.' '여자들은 좋겠다. 몸 팔아서 쉽게 돈벌 수 있잖아.'와 매우 흡사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부 무식한 헛소리인데다가 특정 대상을 비하한다는 것이다. 한번도 그들의 입장이 안 되어봐서 잘 모르면서. 이때 이 공간에 여자 직원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이 말을 입 밖으로 당당하게 내뱉지 않았을텐데. 한 남직원이 이 말을 듣고 가볍게 "전에도 말했지만 그런 말 하면 안 돼."라고 한다. 그게 끝이다. 무슨 아주 어린 아이에게 얘기하듯이 화를 내지도,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한 내색을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기 때문에 빻은말을 들으면 호들갑을 떨든, 화를 내든 과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지적이 효과가 있다. 당사자가 창피함을 느끼거나 진짜 내가 한 말이 문제있는건가? 재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9. 몰리가 사무실에 붙인 포스터.

     사무실 자리를 배정 받고 몰리는 자신의 앞에 있는 벽에 멋진 포스터를 붙인다. 그 포스터엔 'NEVER GIVE UP'이라고 적혀있다. 몰리가 도전적일 뿐만 아니라 야망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0. 온갖 무례한 말을 하며 통화속 상대에게 몰리 뒷담화를 하던 남직원과 그걸 들은 몰리.

     그나마 비중 있는 7번 남직원(이름 기억 안 남.)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요즘엔 백인 남성들에게 적대적인 환경이야. 얼마나 불공평한지 충격적인 수준이라니까? 다양성 정책 때문에 뽑혔대, 무슨 싱글맘이라도 되나 봐."라는 말을 한다. 이 모든 문장이 그저 웃기다.ㅋㅋㅋㅋㅋㅋ 그냥 남성도 아니고 '백인 남성'에게 '적대적인'환경이라니? '얼마나 ^불공평^한지 충격적인 수준'이다라... 몰리가 오기 전까지 모든 작가진이 전부 다 백인 남자였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 전부 다! 백인 남자였다. 그런데 그 수많은 백인 남자들은 생각도 않고 그저 여성 한명이 들어왔다고 해서 불공평? 진짜 웃기다.^^ 왠지 여성전용 임대아파트와 주차장 등에 버튼 눌리는 누군가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저 '싱글맘이라도 되나 봐.'라는 문장은 최고 기득권층인 백인 남성 본인보다 다양성 정책으로 인해 채용되는 싱글맘 쪽이 더 권력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몰리는 싱글맘이 아니지만. 이는 그남들의 역차별 논리와 똑같다. 이 통화를 들은 몰리는 "전 혈연을 이용하느니 다양성 정책으로 뽑히고 말래요. 다른 소수인종 여자들을 제치고 뽑혔다는 뜻이니까요."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너무 좋았다. 느그는 낙하산으로 뽑혔겠지만 나는 소수인종 여자들을 뽑기 위해 뽑혔다고 해도, 그 소수인종 여자들 중에서 내가 가장 잘났으니 뽑힌거라는 마인드. 나도 이런 마인드로 살고싶다.

     

    11. 남직원들의 조롱과 성희롱.

     아직도 초등학생 시절 여자아이들에게 성희롱하고 깔깔대는 찌질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듯한 남직원 한명이 몰리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몰리는 어디 출신이고, 웃는걸 좋아하고... 말을 이어가는 와중에 남직원이 따분하다며 무엇이 싫냐, 어느 동네에 사느냐, 누굴 따먹냐는 질문을 하며 성희롱을 한다. 그러자 몰리는 망설이더니 불공평한게 싫고, 퀸스에 살고있고, 지금 같이 자는 사람 없는데요. 라고 말한다. 곧바로 다른 남직원이 무슨 대학 나왔냐고 묻자 몰리는 '루전 전문대학교'라고 말했고, 남직원들이 "루저 전문대학교요?" "죄송해요, 꼭 발음이 루저처럼 들려서요."라며 몰리를 대놓고 조롱한다. 이것이 앞서 몰리가 싫다고 말했던 '불공평함'이다. 만약 여직원들이 단체로 신입 남직원 성희롱하고 조롱하는 회사 있으면 제발 알려주세요 꼭 가고싶네요.^^

     

    12. 여자화장실을 사용하는 남직원들.

     아... 이 장면도 정말 끔찍하게 싫었다. 여자화장실을 남직원들이 쓴다는 것은 그만큼 여자직원들이 거의 없다는 뜻이니 싫었던 것도 있지만, 난 이 경험을 해봐서 더 싫었다. 전에 다니던 남초회사에서 유일한 여자직원이었던 나는 다른 남직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 이유는 남자화장실이 있는 2층까지 올라가기 귀찮아서, 그동안 여자직원이 없었으니까 여자화장실을 사용하는게 습관이 되어서...ㅋ 심지어 여자화장실을 이용하는 남직원들은 다 나보다 상사였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은 못하고 '남자 출입 금지'를 크게 적은 슬라이드 한장을 만들어 화장실 문에 붙여뒀었다. 그것을 만들면서도 현타가 진하게 왔었다. 아니... 문맹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인데, 남자가 여자화장실 들어가면 안 된다는건 존나 당연한 일인데 내가 이딴걸 굳이 만들고 있다니... 아무튼 나도 겪어본 일이었기 때문에 이 장면이 충격적이지 않아서 더 충격적이다..^^

     

    13. 여자들만이 할 수 있는 개그 대본을 짠 몰리.

     몰리는 자신이 짜온 "공화당 상원 의원 세 명이 또다시 가족계획 연맹 지원 중단 법안을 발의했는데요, 늘 그렇듯 재미를 가장 덜 보는 남자들이 여성의 성생활에 가장 집착하죠. 저도 의외지만 폐경기라 다행일 지경이네요."라는 대본을 발표한다. 아주 당당하게, 캐서린과 모든 남직원들 앞에서. 이 장면도 참 짜릿하다. 그동안 남직원들에게 당했던 것에 비하면 완전히 순한맛이지만. 만일 여성작가와 계속 일했다면 캐서린이 쇼에서 쫓겨날 위기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여자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고 할 수 있는 개그는 절대 남직원들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진부한 쇼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14. 캐서린이 고용한 홍보 담당자.

     요새 sns를 비롯한 마케팅은 필수라는 조언을 들은 캐서린. 그래서 홍보 담당자를 고용한다. 이 홍보 담당자가 마케터로서 일을 잘하고 그것이 효과가 있었지만, 그 짜여진 대본대로, 시키는대로 하는 인형놀이를 보는 기분이라 싫었다. 이 홍보 담당자는 캐서린에게 집에 기자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라며 이런 말을 한다. "캐서린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잖아요, 당신은 어린이를 싫어하는 냉혈한 마녀가 아니라 인정 많고 가정적이죠." 캐서린은 냉혈하고 악마같은 사람인데 인정 많고 가정적이라니...? 본인이 원하는(캐서린이 되어야 하는) 이미지를 말한 것인지 원래 여성은 인정 많고 가정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진건지는 모르겠지만 당황스러운 대사였다. 이후에 몇마디를 주고받다가 "붙임머리는 어때요?"하고 묻는다. 이게 이 홍보담당자가 문제인게 아니라 이 사회가 무엇을, 어떤 이미지의 여성을 원하는지 아주 잘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미워할 수 없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은 이 대사보다 더 끔찍하다. 결국 파티를 연 캐서린의 복장이 정말 노답이다. 가슴부분이 깊게 파인 옷 같지도 않은 옷을 입고있었다. 이게 핫핑크색이라서 더 싫었다.

     

    15. 자신의 경쟁자였던 남자에게 맞말하는 몰리.

     캐서린의 파티에서 7번남의 남동생인 (구)경쟁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남은 "합격하셨다니 참 기뻐요. 당신을 고용했다니 참 멋져요."라고 말하고, 그에 대한 답으로 "네, 저도 가장 재미있는 적임자를 고용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며 당당하게 받아친다. 이 말의 뜻은 누구처럼 낙하산으로 고용하는게 아니라 나 같은 적임자를 고용하는게 중요하다는 거겠지?ㅎㅎ 영화 초반부에는 소극적인걸 넘어서 남의 눈치를 심하게 보는 몰리였는데 점점 당당하게 변해서 좋다.

     

    16. 방송국 사장, 캐롤라인에게 할말 다 하는 캐서린.

     캐롤라인이 캐서린에게 내가 당신을 보고 웃을 것 같냐고, 내가 방송국 사장으로서 당신을 재밌게 볼 것 같냐고 물으니 캐서린이 "내 후임으로, 인터넷에 짤이나 떠도는 1차원적이고 외국인 혐오와 여성 혐오를 감추면서 성격 좋고 철없는 대학생처럼 구는 인간이 괜찮아 보인다면 얼마든지 그러라고요."라고 말한다. 이 대사를 듣고 순간적으로 이 묘사와 정확히 일치하는, 여러명의 인기 남자 방송인들을 떠올리고 소름 돋았다. 근데 그런 놈들이 인기 많고 돈을 많이 번다. 정말 이상하다. 아마 위에서 묘사한 남자가 후임으로 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악착같이 자신이 이 쇼를 지키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치욕스럽다.

     

    17. 7번남의 맨스플레인.

     캐서린이 몰리에게 화를 내며 "네 감정 상태를 나한테 다운로드하고서~"라고 말을 하는데 갑자기 7번남이 끼어들더니 "그건 업로드죠."라고 한다. 캐서린이 뭐라고? 되물으니 7번남은 눈치도 없이 구구절절 맨스플레인을 한다. 그걸 듣던 캐서린이 "닥쳐. 웬 지랄이야?"라고 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통쾌해.^^

     

    18. 몰리의 자선행사에서 자신 만의 개그로 사람들을 웃게 하는 캐서린.

     몰리가 자선행사 때문에 일찍 퇴근한 것 때문에 잘랐던 캐서린이 그 자선행사에 찾아간다. 그리고 몰리의 인사멘트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쥐고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말을 한다. 처음에는 이상한 말을 해서 관객들의 반응을 얻지 못하다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이용해 즉석으로 개그를 만들어 말하니 관객들의 웃음과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말들 중에 특히 "전 주름 제거술을 받아야 목소리 연기나 하겠죠. 보톡스나 입술 필러를 맞아야 픽사 영화에서 현명한 고목 역을 맡겠죠."였다. 이 연예계의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나이든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개그라고 생각한다.

     

    19. 캐서린의 후임이 될 뻔 했던 코미디언남의 저열함.

     그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며 이런 말을 한다. "여자친구랑 같이 왕좌의 게임을 봤는데, 여자친구가 그러더군요. '맙소사, 너무 불공평해. 여자들은 다 알몸인데 남자들은 아무도 안 벗잖아.' 그래서 제 거시기를 꺼냈더니 여자친구가 그러더군요. '엄마야, 징그러워!' 제가 말했죠. '위선자 아니야?'" ㅋㅋㅋㅋㅋ... 진짜 더럽고 저열하다. 관객들은 뭐가 좋다고 깔깔 웃는데 캐서린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곧 이 수준 낮은 코미디언남에게 자신의 자리를 뺏길 판이니 얼마나 싫었을까.

     

    20. 다양한 인종과 성별의 사람들로 가득한 회사

     원래 이 장면 전까지는 부하직원들이 모두 백인 남자였다가 중간에 주인공인 유색인종 여성이 들어갔었는데, 영화 끝부분에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흑인 여성 두명, 백인 여성 한명, 동양계 남성 한명이 뉴페이스였다. 몰리를 계기로 다양한 인종과 성별의 부하직원들을 고용한 캐서린은 위기를 견뎌내는 과정을 거치고 많이 발전했다. 부하직원들의 이름을 모두 외운 장면도 있었다. 다소 클리셰고, 전의 악마 같은 모습도 좋았지만 인간적으로 좋게 변화한 캐서린이 대단하다. 그 나이에 꼰대였던 사람이 이렇게 변한다는게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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