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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젠더롤을 수행하지 않는 여자아이를 담은 영화 <톰보이> 감상문 (스포O)
    영화 감상문 2020. 5. 1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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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 있음.

     

     셀린 시아마 감독전에 못 갔던 나는 톰보이를 비롯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그래서 5월 톰보이 개봉 소식을 듣고 뛸듯이 기뻐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캘린더에 표시해뒀었다. 그리고 개봉일인 오늘(14일) 보러갔다. 마침 새로 사귄 동네친구와 만나기로 했어서 잘됐다 싶어 함께 톰보이를 봤다. 영화는 기대했던 만큼 좋았고,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16일에 한번 더 봤다^^) 이제부터 지극히 주관적인 내 감상과 추측을 담은 감상문을 써내려가고자 한다. 이 감상문은 전체적인 스토리 위주, 로르와 리사의 관계, 로르와 잔의 관계, 영화 속에서 드러난 여성혐오와 젠더롤, 사소한 추측과 궁금증, 짧은 총평 정도로 나누었다. (글이 매우 기니 읽고싶은 부분만 읽으셔도 됨.)


    #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 위주의 해석과 감상

     

     영화 제목인 '톰보이'는 한국말로 옮기자면 '선머슴'이다. 선머슴이란 보통 '남자처럼' 행동하는 여자아이를 일컫는다. 솔직히 '남자처럼'은 웃긴 표현이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로르는 흔히들 말하는 '톰보이'다. 또래의 여자아이들과는 다르게 머리가 짧고, 치마나 원피스 등을 입지 않고 바지와 런닝셔츠, 파란색 후드집업을 주로 입는다. 영화 초반에 로르의 파란색 벽지와 무채색 커튼으로 이루어진 방이 나오다가 잔(로르의 여동생)의 온통 핑크색인 방이 나왔을 때의 그 신선한 충격을 잊지 못한다. 생각보다 직접적으로 연출해서 더 와닿았다. 그리고 슬프게도 잔의 방이 너무 익숙했다.

     

     로르는 엄마가 선물해준 목걸이 줄을 운동화 끈으로 갈아 끼운다. 원래 목걸이 줄의 색이 핑크색이었는데, 로르는 핑크색을 싫어하나 보다. 받으며 고맙다고는 했지만 받자마자 방에서 흰색 운동화 끈으로 바꾼다. 그런데 그 목걸이를 메고 걸어가다가 친구들 앞에 서기 직전에 빼서 주머니에 넣는다. 아마 남자애가 왜 이런 목걸이를 하냐, 이런 말을 들을까봐도 그 이유겠지만, 불편해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걸어가며 달랑달랑 가슴께를 치는 목걸이가 내 눈에도 정말 불편해 보였다.

     

     로르의 겉모습과 선호하는 것, 이것들은 그냥 한 아이의 취향일 뿐이다. 서로 좋아하는 색깔과 음식이 다른 것처럼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로르의 주변에서 '로르 같은' 여자아이를 못봤기 때문에, 자신이 사회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이상하게 보일 것이라는 걸 눈치챈 로르는 결국엔 남자 행세를 하며 새로 이사온 동네의 친구들과 ​어울린다. 우리나라도 대부분의 이름을 들으면 여자이름인지, 남자이름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프랑스도 그렇게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이름이 뭐냐고 묻자 로르는 본명을 숨기고 가짜이름인 '미카엘'이라고 답한다. 로르는 이 이름을 즉석으로 생각해낸걸까, 아님 미리 생각해둔 이름인걸까 궁금했는데, 영화를 두번 보며 관찰해보니 리사가 이름을 물었을 때 몇초간 꽤 뜸을 들였으니 임기응변이었지 않을까 싶다. 로르는 이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미카엘'이라는 남자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 트위터에서 보고 리사가 로르에게 이름을 물어볼 때 남성형 질문으로 했다는 것을 알았다. 로르는 처음부터 남자아이처럼 보이려고 했던게 아니라 얼떨결에 그렇게 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로르가 진심으로 남자가 되길 바랐다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

     

     로르는 윗옷을 벗고 남자애들과 축구를 한다. '여자는 축구에 안 끼워준다'는 리사의 볼멘소리를 들으며 로르는 구경하는게 더 좋다고 했는데, 그날 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옷을 벗어도 괜찮을지 가슴을 매만져보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한참 보다가 축구하는 남자애가 했던 것처럼 침 뱉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다음날에 남자애들과 같이 축구를 한다. 처음엔 옷을 입고 축구를 하다가, 경기 도중에 가슴께의 옷자락을 몇차례 잡아보고 매만지며 망설이다가 옷을 벗고 다시 축구를 한다. 아직 어린나이어서 여자애와 남자애가 구분이 안 가다 보니, 친구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젯밤 연습했던 것대로 바닥에 침을 뱉는다. (나쁜 행동인데 대부분 길바닥에 침 뱉는 성별이 남성이라는게... 그리고 그걸 어려서부터 남자애들이 학습한다는게 현실적이다...ㅎ) 또 축구를 하며 로르의 팬티가 살짝 보이는것도 그동안 남자들만 그런걸 봤어서 신선했다.

     축구를 하다가 한 남자애가 중간에 잔디 위에서 뒤돌아서 당당하게 소변을 본다. "오줌 쌀 사람 이리와!"라는 말과 함께. 이 장면에서 서서 소변을 보는 남자아이의 몸과 멀뚱히 서서 바라보는 로르의 몸이 나란히 보이도록 한 카메라 연출이 좋았다. 로르도 소변을 보고싶었는데 남자행세를 하고있기 때문에 숲속으로 꽤 깊이 뛰어가 앉아서 소변을 본다. 이때 리사가 로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이지 않았을까? 이 장면을 한 남자애가 보게 되는데, 난 로르가 여자인거 들켰나 싶어서 놀랐지만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아마 로르가 남자행세를 하고있지 않았더라도 숲속에 들어가서 소변을 봤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남성권력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날 밤, 아빠에게 로르가 매달려 안겨있는 장면에서, 몸이 검게 그림자처럼 보여서 두 몸이 합쳐진 것처럼 보였고, 그 모양이 당당하게 소변을 보던 남자애의 포즈와 겹쳐보였다.(로르의 다리모양-남자가 소변볼때 팔모양이 비슷해 보임.)

     이때도 그렇고 로르가 빨간 바지를 입고 있는 장면이 많다. 다른 장면에서 파란 후드집업을 입거나, 파란 런닝과 빨간 바지를 입고있을 때도 있었는데, 영화 시작과 끝에 나오는 Tomboy의 알파벳이 빨간색과 파란색이 번갈아 칠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사회적으로 여자색-빨강, 남자색-파랑이라는 것을 이용한 연출이 아닐까 생각한다. 상반신은 여느 남자애들과 같은데 하반신을 보면 여자애인걸 알 수 있으니 상반신에는 남자의 색으로 일컬어지는 파란색 티를 입고, 하반신에는 여자의 색으로 일컬어지는 빨간색 바지를 입게 한 것 같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의 연출이 한번 더 나온다.

     그 다음엔 다같이 물놀이를 간다. 물놀이를 가기 하루 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반적인 여자아이의 수영복(런닝과 삼각팬티가 붙어있는 모양)을 로르는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삼각팬티 부분만 입는다. 이 수영복의 색깔도 빨간색이었다. 상반신 부분을 잘라냈기에, 이번에도 하반신에 빨간색 옷을 입은 것이다. 그렇게 수영복을 입고 전신거울 앞에 서서 몸을 옆으로 돌려가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장면이 넘어가고, 클레이를 가져와서 놀거라며 클레이로 무언가를 만든다. 잔이 무엇을 만드냐고 여러 차례 물어보지만, 절대 대답해주지 않는다. 난 정말 그 다음장면으로 넘어갈 때까지(클레이의 형상을 보았음에도) 그 클레이의 용도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것의 용도는 다름 아닌 남자아이의 성기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딱 달라붙는 수영복을 입었는데 남자아이들과 외형적으로 차이가 나니까 완벽한 위장을 위해 클레이고추(..)를 만들어 수영복 안에 넣고 뿌듯해한다. 축구하는 남자애가 중간중간 침을 뱉는 것을 보고 그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과 이 클레이 장면을 보면 로르는 관찰력이 좋고, 섬세하고, 똑똑하다.

     잔에게도 오빠라고 거짓말을 시키며 똑똑하게 남자행세를 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 남자애가 잔을 일부러 밀어서 넘어지게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잔이 전에 살던 동네에서도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애들을 로르가 때려서 혼내줬다고 했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이 그 넘어뜨린 남자애를 응징하려 몸싸움을 했다. (물론 폭력은 나쁜거지만) 남자애와의 몸싸움에서 힘으로 이겨 눕히고야만 로르가 멋졌다. 그래서 맞았던 남자애가 엄마와 함께 로르의 집으로 찾아왔고, "이 집 아들이 우리 아들을 때렸어요."라는 말을 듣고 로르의 엄마는 큰 충격에 빠져 로르를 혼내키다 손찌검까지 한다. (솔직히 뺨 때린거 너무 충격적이었음.)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폭력을 쓰지도 않고, 그냥 잔잔하게 얘기를 한다. 왜 사회적 여성성에 대해 엄마들이 더 예민하게 반응할까? tmi지만 나도 머리 단발에서 숏컷으로 자른다고 했을 때 미용실 가는 당일까지도 엄마가 말려서 싸웠었다.(덕분에 오기 생겨서 투블럭 함.) 근데 아빠(뼛속까지 한남)는 내 투블럭한 머리를 보고 시원하게 잘 잘랐다고 좋게 반응하고 그 뒤로 머리에 대한 언급 일절 없었다.

     장면이 바뀌고 다음날 엄마가 파란색 원피스를 사와서 로르에게 강제로 입으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로르의 손을 강제로 끌어 동네친구들의 집에 찾아가서 여자애라고 밝히자고 한다. 이제 곧 학교입학도 하고, 이 남자행세를 그만두어야 한다는건 나도 동의하지만 이 장면이 정말 너무나 폭력적이었다. 애초에 파란 원피스를 강제로 입힌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냥 엄마랑 동행해서 여자애라고 말하면 당연히 믿을텐데, 굳이 사회적인 여성성을 어필하고자 원피스를 입혀야 했을까? 원피스의 색이 파란색인 것도 앞의 장면들에서 자주 입었던 빨간 바지와 완벽히 대비된다는 점에서 참 상징적이다. 나름 로르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고른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싫다. 자신의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잘 알면서, 억지로 원피스를 입힌 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그리고 엄마가 로르에게 "널 상처주려는것도, 가르치려고 하는것도 아니야."라고 한거 정말... 어이없었다. 그 파란원피스로 가르치려는 바가 무엇이고 그걸 억지로 입혀서 끌고왔으면서 저런 가스라이팅을 하다니.

     로르가 때렸던 남자애의 집에 찾아가서 엄마들끼리 방에서 얘기를 나눌 때 벽에 기대어 나란히 서있던 남자애가 로르를 계속해서 흘깃흘깃 보는데 로르가 기분이 얼마나 안 좋았을지.. 보는 나도 기분이 나빴다. 그 시선이 왠지 익숙하다고 느꼈는데, 탈코하고 길을 걸을때 자주 받던 시선과 닮았다. 얘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하려는 기분 나쁜 시선. (리사의 집에 찾아갔던 장면은 아래에서 다룸.)

     

     로르는 파란 원피스를 입고 숲속에 혼자 앉아있다가 파란원피스를 벗는다. 그리고 나무에 원피스를 걸고 뒤돌아 걸어간다. 얼마 전에 남자처럼 보이고 싶어 옷을 벗었던 로르가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기 위해 사회적 여성성인 원피스를 벗는 것으로 해석했고, 축구를 하며 윗옷을 벗던 장면과 원피스를 벗는 장면이 겹쳐보여서 좋았다.

     원피스를 벗고 숲을 나가려다가 자신이 때렸던 남자애가 로르는 여자라고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고 있는걸 로르가 몰래 훔쳐보고 있다 들켰다. 열심히 도망쳤지만 결국 잡혔고, 동네친구들 무리가 믿지 못하자 (로르를 제외한) 유일한 여자인 리사에게 로르가 '진짜 여자인지' 확인시켰다. 이 장면도 좀 끔찍했지만 적나라한 연출을 하지 않아서 안도했다. 하지만 나무에 기대 서서 연신 훌쩍거리는 로르가 너무 안쓰러웠다. 남자애들이 비아냥대며 리사에게 "넌 여자애랑 키스한거네! 구역질 안 나냐!"라고 말했고 리사가 징그럽고 역겹다고 했다. 나는 리사의 이 말이 거짓말이라고 확신한다. (자세한 이유는 아래에서 다룸.)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베란다에 서있던 로르는 아래에서 자신을 보고있는 리사를 발견한다. 첫만남때도 로르를 보고있었다고 했던 리사의 말이 생각났다. 로르는 리사를 만나기 위해 내려갔고, 리사와 로르가 단 둘이 있다가 리사가 "네 이름이 뭐야?"하며 묻는다. 그러자 로르가 "로르."라고 답하고 미소를 지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엔딩 장면 해석도 아래에서 다룸.)

     갑작스레 끝난 감이 없지 않아 있어 살짝 당황했지만 그건 잠시였고 엔딩 장면이 참 좋았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후로 두번째라 아직 잘 모르지만, 두 작품 모두 열린 결말로 끝나는걸 보니 '다른 작품들도 열린 결말인가?'하는 의문이 생겼다.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결말을 두고 '엔딩이 애매하다.'라던지, '마무리가 별로였다.'라는 평가를 남기기도 한다. 무엇이든 확실하게 결정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이런 셀린 시아마 감독만의 은은한 결말을 사랑한다. 또한 열린 결말이기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처럼 여러 사람들이 생각한, 다양한 '그 후의 이야기'가 나온다는게 참 매력적이다.



    # 로르와 리사의 관계에 대한 해석과 감상

     

    1. 진실게임 하자고 먼저 제안한 리사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이 장면에 대해 아무생각이 없었는데, 두번째 볼 때 리사가 먼저 진실게임을 제안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진실게임을 하자고 하는 경우가 꽤 있다. 진실게임에서 "너 얘 좋아하지?"라는 질문은 장난으로라도 꼭 나오는 질문이기 때문에(영화에서도 나옴.), 그 질문의 대상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쉽게도 "너 리사 좋아하지?"라는 질문이 다른 남자애에게 향하지만, 리사는 그 질문이 로르에게 향하길 내심 바라고 진실게임을 제안했다고 추측한다.

     

    2. 축구하는 남자애들을 함께 구경할 때 리사가 로르에게 "넌 좀 달라보여서."라고 말한 장면

     리사가 로르를 빤히 바라봐서 로르가 왜그러냐고 묻자, 리사가 "넌 좀 달라보여서."라고 말한다. 이때 리사는 약간 아래위로 훑듯 로르를 쳐다본다. 나는 이 장면에서 리사가 로르에게 마음이 있나? 생각했다. 왜냐하면 저 약간 아래위로 훑는 시선이 굉장히 낯익었다. 내가 불초상에서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에게 처음 반했다고 추측하는 장면인 마리안느의 피아노 연주 장면. 그 장면에서 여름 3악장을 연주하는 마리안느를 엘로이즈가 딱 저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불초상 vod 구매하신 분들 확인해보세요 정말 똑같다고요...! (이 눈빛은 리사가 로르에게 "우리집에 올래?"라고 묻는 장면에서도 나온다.) 아무리 로르가 남자행세를 했고 그것에 속았다고 해도 보통 남자애들과 로르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 리사는 그런 매력에 끌렸던게 아닐까?

    3. 리사네 집에 로르가 놀러간 장면

     리사네 집에서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함께 춤을 추는데 그 노래의 가사가 "널 사랑해, 언제나"였다. 이 장면에서 리사가 로르를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일부러 이 곡을 선택해서 간접고백을 한게 아닐런지..ㅎㅎ 그리고 이 노래는 엔딩크레딧에도 나온다. 그래서 로르가 여자인걸 알았더라도 리사는 계속 로르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위에서 리사의 역겹다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확신하는 이유) 이어지는 장면에서 리사가 로르를 화장시켜준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로르가 여자애인걸 알고 화장을 시켜주는게 아니라 남동생 여장시키는 누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3. 리사가 로르에게 뽀뽀하는 장면
     물놀이 다녀온 날, 리사가 로르의 눈을 가리고 가볍게 입맞춤을 했고, 로르는 멀뚱멀뚱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한참 뒤에나 웃어보인다. 이것이 나는 로르가 리사를 좋아해서 웃은게 아니라, 리사에게 입맞춤을 받음으로써 완벽하게 자신이 남자로 보이는구나, 확신에 찬 눈빛과 웃음으로 보였다. 리사를 정말 좋아했다면 바로 웃었어야 하는거 아닐까? 로르가 여성애를 해본적이 없어서 당황해서 멀뚱멀뚱 있었던걸까도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다시 그 장면을 떠올려봐도 눈동자가 흔들리거나 감정이 요동치는 듯한 기색이 없었던 것 같다.

    4. 로르가 리사에게 뽀뽀하는 장면
     "학교를 다녀왔는데 네 이름이 없더라, 반은 하나밖에 없는데."라며 이상하다고 말하는 리사에게 로르는 내가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처리가 안 됐나봐. 이런식으로 둘러댔다. 리사가 "같은반 되니까 좋지?"하고 물으니 로르가 대답 대신 리사에게 뽀뽀를 한다. 이 장면에서도 뭔가 '이렇게 해야할 것 같아서' 뽀뽀한 것처럼 보였다. 뽀뽀를 하고 나서 웃거나 좋아하는 듯한 느낌을 전혀 못 받았다.

    5. 로르와 리사의 양방향 사랑이 아닌 리사의 짝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앞서 적은 3, 4번 문단도 이유에 포함되고 또다른 이유가 있다. 잔이 동갑인 친구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전에 살던 동네에서 나를 괴롭히는 남자애들이 많았는데, 걔네들을 로르가 다 때려줬고, 언니들이 다 로르를 좋아했다. 그런데 로르는 늘 나만 좋아했다.'고 말한것에서 확신했다. 로르는 아직 여성애를 해본적이 없고 관심도 동생에게만 있었기 때문에 그저 리사의 남자친구 행세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말 좀 잔인하지만 여자친구를 사귀면 남자처럼 보이는 것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6. 로르가 여자인 것을 알리려고 리사네 집에 찾아갔던 장면
     리사를 기다리며 문 앞에서 왔다갔다 서성이다가 리사가 집에 들어오니 황급히 벽 뒤로 숨는 로르. 리사는 얘기를 전해듣고 로르를 화난 표정으로 바라보다 아무말 없이 방문을 쾅 닫으며 방에 들어간다. 나는 남자인 줄 알았던 로르가 여자라서 화가 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로르가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좋은데, 로르가 자신을 남자행세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취급한 것 같아서,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한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화가 났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7. 마지막 장면
     로르가 이사온 첫날처럼, 베란다에 서있던 로르를 리사가 쳐다보고 있었고 로르가 아래로 내려가 리사를 만난다. 이 장면에서 주위에 남자애들은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들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거겠지. 하지만 리사는 여전히 로르에게 관심을 보이고 말을 걸어주었다. 로르에게 "네 이름이 뭐야?"라고 묻는 장면은 처음 만났던 장면과 겹친다. 예전엔 미카엘이라는 꾸며낸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로르라는 여자애에 대해 알고싶어 하고, 로르를 여자애로서 좋아할 것 같다고 느꼈다. 비록 꾸며낸 존재는 사라졌지만, 이름만 달라졌을 뿐 로르는 예전 로르의 모습 그대로다. 로르를 좋아했던 마음이 없어질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하며 미소를 짓는 로르. 이런(사회적으로 '남자 같은') 자신도 여자라는 것을 아무런 질문 없이 받아들이고, 계속 친구로 남아주는 존재는 리사가 처음이기 때문에 기뻐서 로르가 웃었던 것 같다.


    # 로르와 잔의 관계에 대한 감상

     

     로르와 잔은 정말 친하고 서로를 아끼는 사이라는걸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다. 잔을 밀어서 넘어뜨린 남자애를 때려주고, 잔의 다리에 생긴 상처에 빨간 약을 발라준다. (이 장면에서 '빨간'약과 '파란'밴드가 나옴으로써 또 한번 빨파연출이 나온다.) 그리고 잔의 반대쪽 다리에 빨간약으로 하트를 그려준다. 이 장면에서 잔을 향한 그 애정의 크기가 전해져서 참 좋았다.

     

     엄마가 로르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끌고가는 장면에서, 잔이 로르의 손을 잡고 막으려고 한 것에서도 로르를 아끼는 마음이 보였다. 엄마와 로르가 나가고 나서 잔의 걱정하는 듯한, 속상해하는 표정이 잡혔는데 잔이 언니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참 따뜻하다.

     

     엄마에게 혼났던 날 밤, 원래는 방이 따로따로 있는데 잔이 로르의 침대 위로 올라와 같이 눕는다. 분명 로르를 위로하려고 온 것이다. 이 장면도 너무 좋았던게, "괜찮아?"라던가 "언니 속상해하지마."와 같은 전형적인 위로의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언니, 라고 부르지도 않고) "누군지 맞춰봐."라고 말하니까 로르가 바로 고개를 돌려 열심히 누구인지 맞추기 놀이를 해준다. 잔의 위로방법인걸까, 나는 이 장면이 빨간약 장면처럼 다정하고 따뜻해서 너무 좋다. "누군지 맞추기 놀이하자!"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바로 맞추기를 할 정도로 둘은 생각보다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 영화 속에서 드러난 여성혐오 요소와 젠더롤

     

    1. 잔의 발레복

     이 발레복 등부분이 꽤 크게 파여있는걸 보고 기함했다. 도대체 아동이 입는 발레복에 저게 무슨 짓이지? 핑크색 치마가 달린 발레복 자체가 사회적으로 여자애들에게 입히는 옷이지만 특히 이 등부분 디자인이 너무 싫었다.

     

    2. 잔이 로르와 목욕하면서 부르던 노래

     이 노래 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대충 가사 중에 '여자들은 화장을 하고, 남자들은 지루해하네요.'라는 가사가 있었다. 이게 동요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아이가(잔은 6살이다.) 이런 노래를 부른다는게 충격적이었다.

     

    3. 리사가 축구에 끼지 못하고 음료수를 들고있던 것

     리사가 여자는 축구에 끼워주지 않는다며 구경만 하던 장면에서도 화가 났지만 다음날인 이 장면이 더 싫었다. 남자애들은 축구를 하며 뛰노는데, 여자애는 축구를 하고싶어도 못하고 그저 운동장 밖에서 (남자애들이 마실)음료수를 들고 서 있는거 진짜 너무 여성혐오적인 환경이다...

     

    4. 잔이 로르를 그려주는 장면

     이 장면은 포스터의 장면이기도 하다. 나는 처음에 이 포스터를 보았을 때, '왜 후드집업을 저렇게 살짝 내렸지?'라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잔이 로르를 그려주는데, 영화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분명 잔이 그렇게 후드집업을 내려줬을 것이다. 로르는 자신의 모델이니까. 어깨만 살짝 내보이는, 겉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저 모양새는 성인 여성들의 패션에서 자주 보던 것이다. 잔은 미디어 속 성인 여성들의 이미지가 머리속에 단단히 자리잡아 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나름의 연출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잔의 팔 앞에 살구색의 색연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르의 얼굴을 핑크색 색연필로 그린 것도 눈에 보였다. 여자들이 어려서부터 핑크색을 좋아하도록 길러진다는 것을 알기에 이 그림도 의미있는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5. 로르에게 화장을 시켜주는 리사

     이때 리사가 '여자애처럼' 화장하자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한숨만 나왔다. 도대체 여자애처럼이 뭔데!!! 로르에게 진하게 풀메이크업(...)을 시켜주고 리사가 잘 어울린다, 예쁘다, 라고 하며 '칭찬'을 하는데, 짧은 머리의 로르에게 화장을 씌우니 정말 기괴해보였다.

     

    6. 잔이 로르의 머리를 잘라주던 장면

     꿈이 미용사라며 잔이 로르의 뒷머리를 잘라주는데, 로르가 그 자른 머리카락을 콧수염처럼 붙여서 저음 목소리를 내며 "반갑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고 아 정말 어린 나이에 다들 사회적인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깊게 자리잡혀 있구나를 또다시 느꼈다. 목소리가 저음인 여자도 있고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진 남자도 있기 마련인데, 로르가 생각하는 남자의 이미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 (정말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사소한 추측과 궁금증

     

    1. 왜 하루 먼저 잔과 엄마가 새집으로 오고, 그 다음날 로르와 아빠가 따로 온 걸까?

     일단 지금은 잔-엄마, 로르-아빠 재혼가정이라는 가설을 밀고있다. 이 가설이 맞다면 영화 내내 로르가 아빠랑 유독 더, 훨씬 친해보이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잔이 전에 살던 동네에서 로르와 같이 살았다고 했으니 같은 동네여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같이 살지는 않았고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가정을 합친게 아닐까. 그리고 잔이 동갑내기 친구에게 "나는 오빠가 더 좋아."라고 했던게 단순히 로르를 오빠로 거짓말해서 말한게 아니라 원래 친오빠가 있었고, 이혼하면서 잔의 아빠가 오빠를 데려가서 오빠가 그리웠던게 아닐까? 그리고 로르의 엄마가 임신했던 아이는 지금의 아빠랑 만든 아이 같다.

     

    2. 엄마 뱃속의 아가한테 로르는 뭐라고 속삭였을까?

     나는 당연히 남동생으로 태어나달라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사를 만나기 전까지 남자애들이랑만 어울렸다던 로르니까 여동생인 잔도 좋아하고 아끼지만 자신의 코드와 맞을 것이라 예상하는 남동생을 무척 원했을 것 같다.

     

    3. 막내 동생의 성별은 무엇일까?

     태어난 막내 동생의 옷은 노란색이었다. 이는 일부러 동생의 성별을 알려주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여동생이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아기를 보는 로르의 표정이 들뜨지 않고 조금 뚱한 표정이었기 때문에.

     

    4. 아빠와 하던 카드놀이에서 로르는 왜 딸을 골랐을까?

     이건 진짜 엄청 쓸데없는 궁금증인데...ㅋㅋㅋㅋㅋㅋ 별 의미없는 대사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에 쓸데없는 연출과 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의미를 두고 궁금해했다. 로르가 정말로 아들이(남자가) 되길 원했다면 아들을 선택했을 것이다.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게 그렇지 않나? 탈코하고 나서부터는 게임상에서 어떤 캐릭터를 선택해야할때 짧은 머리의 캐릭터를 선택하게 되는 것처럼. 로르는 자신을 딸(여자)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절대 남자가 되고싶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장면을 보고 확신했다.

     

    5. 로르가 잔에게 읽어준 동화책은 무슨 내용이고, 무슨 의미일까?

     이건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궁금증이다. 무슨 숲속에서 신음이 들려왔고 어쩌고.. 사실 내용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동화를 읽는 장면을 넣은 이유가 분명 있을텐데 제목이 무엇이고 무슨 내용인지, 이 내용이 어떤걸 의미하는지 너무 궁금하다. (불초상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처럼 무슨 의미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6. 로르가 만들었던 클레이를 왜 유치를 모아둔 상자에 보관했을까?

     이건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던 건데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질문하시는 걸 보고 아 그러게? 싶어서 궁금해졌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둘 다 내게 없는 것이라는 의미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유치는 내게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약간 다르다.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어릴 때 빠지는 유치처럼, 이런(톰보이인) 자신을 드러내기 두려워하고, 남자행세를 하는 것도 어릴 때 하고 그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 짧은(?) 총평

     

     일단 '믿고 보는 셀린 시아마'라고 쓰고 싶다. 원래 무엇이든 기대를 많이 하면 항상 실망하기 마련인데, 나는 불초상을 보기 전날에 터질 것 같은 기대감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도 실망은 커녕 너무 좋았고 그저 최고였다. 이번 톰보이도 그렇다. 잠을 못 잘 정도는 아니었지만 5월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정말 많은 기대를 했고, 이번에도 절대로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셀린 시아마 감독 작품만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은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보이면서도 실은 엄청 자극적이라는 점이 아닐까? 불초상도 그랬고 톰보이도 그랬다. 그리고 영화 속 숨은 의미를 해석하는 재미가 있고, 소소한 궁금증이 생기게 하고, 사람들마다 다양한 해석과 열린결말의 그 후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도 좋다.

     

     톰보이 영화평을 보면 전부 다 '로르는 트랜스젠더다', '로르는 정말로 남자가 되고싶어 했다.', '로르의 성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영화이다.' 이런 것들밖에 없길래, 너무 답답해서 여성주의자인 내가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해석한 감상문을 써서 게시하고 싶었다. 투머치토커+셀린시아마 영화에 진심비언이라 글이 엄청 길어졌지만ㅎ.. 암튼 짧고 굵게 총평을 적자면, 로르는 절대로 남자가 되고싶어 했던 것이 아니고, 그저 젠더롤을 수행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 영화도, 퀴어 영화도 아니며, 사회적 여성성을 싫어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여자아이의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로르'들이 트랜지션을 해왔을지를 생각하면 착잡하다. 젠더롤이 싫으면 수행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그것을 없애면 되는 것인데 그 젠더롤에 맞도록 자신의 성(sex)을 바꾸는 사람들이 많다. 다 어른들과 사회의 잘못이다. 우리는 젠더롤을 수행하지 않는, '남자 같은' 여자와, '여자 같은' 남자를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너의 성(sex)을 바꾸는 행위를 권하고, 다 이해한다며 응원과 격려를 하는 것이 아니라.(진짜로 다 이해했으면 젠더롤 수행하지 않는 건 왜 이해 못하는데?) 세상의 모든 '로르'들에게 이 영화의 메시지가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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